미아 햄과 1999년 여자 월드컵: 스포츠 브라 논란과 여성 스포츠의 부흥
미아 햄과 1999년 월드컵, 그리고 스포츠 브라 논란
1999년 7월 10일, 캘리포니아 패서디나의 로즈 볼. 90,185명의 관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브랜디 채스테인(Brandi Chastain)이 승부차기 마지막 킥을 성공시키자 미국은 중국을 꺾고 두 번째 여자 월드컵 우승을 차지했다. 그러나 그 순간 더 강렬했던 것은 그녀가 벌떡 일어나 자신의 유니폼을 벗어던지며 드러낸 검은색 스포츠 브라였다. 이 장면은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의 표지를 장식했고, 여성 스포츠 역사상 가장 상징적인 이미지 중 하나로 남았다.
이는 단순한 우승 세리머니가 아니었다. 오랜 시간 '여성의 몸'이 어떻게 보여야 하는지에 대한 사회적 프레임에 도전하는 행위였으며, 동시에 여성 운동선수를 '선수'로 인정받게 한 장비, 즉 스포츠 브라의 당당한 선언이었다. 미아 햄(Mia Hamm)이 이끌었던 1999년 미국 여자 대표팀의 열풍과 채스테인의 스포츠 브라 논란은 여성 스포츠 역사에 하나의 축을 이루는 이야기다. 필자는 스포츠 문화사 연구자로서 이 두 사건이 교차하는 지점을 조명해보고자 한다.
세계를 사로잡은 여성 스포츠 아이콘, 미아 햄
1999년 대회를 앞두고 미국 여자 축구의 간판은 단연 미아 햄이었다. 그녀는 15세에 최연소 국가대표로 데뷔했고, 1991년 첫 월드컵 우승을 경험했다. 기량뿐 아니라 스타성이 돋보였던 햄은 나이키와 게토레이의 광고 모델로 활동하며 '여자 마이클 조던이 누구냐'는 수사학의 주인공이 됐다. 특히 그 유명한 광고에서 햄은 조던과의 펜싱, 농구, 유도 대결에서 승리하며 'Anything You Can Do (I Can Do Better)'라는 메시지를 전달했고, 이는 대중의 강한 인상을 남겼다 .
그러나 그녀의 진정한 가치는 '팀 플레이어'로서의 모습이었다. 동료 줄리 포디(Julie Foudy)는 "미아는 슈퍼스타였지만 항상 팀의 일부로 행동했다"고 회상한다. 개인 통산 108호 골로 세계 신기록을 세우며 세계 축구의 간판으로 우뚝 섰지만, 그녀는 항상 팀의 승리를 먼저 생각했다 [citation:4][citation:10]. 1999년 대회 조별리그 나이지리아 전에서 상대의 거친 반칙에 여러 번 쓰러졌음도 불구하고, 햄은 침착하게 골과 어시스트를 기록하며 7-1 대승을 이끌었다. 티퍼니 밀브렛(Tiffeny Milbrett)은 "그런 태클은 오히려 미아를 화나게 할 뿐"이라며 "공을 골망에 꽂는 것보다 더 좋은 답은 없다"고 말했다 [citation:1].
1999년 월드컵의 기적: '우리는 될 거라 믿었다'
사실 이 대회는 순탄치 않았다. 국제축구연맹(FIFA)은 재정 손실을 우려해 동부의 소규모 경기장에서 대회를 열려 했다. 그러나 조직위원장 마를라 메싱(Marla Messing)은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7만 6천 명이 넘는 관중이 운집한 모습을 보고 큰 경기장 유치를 결심했다. 선수들과 조직위는 직접 마케팅에 나서 클리닉과 사인회를 열며 티켓 판매에 공을 들였다 .
- 78,972명 — 1999년 6월 19일, 미국 vs 덴마크 개막전. 역대 여성 스포츠 이벤트 최다 관중 신기록 ].
- 90,185명 — 7월 10일, 미국 vs 중국 결승전. 로즈 볼을 가득 메운 역대 최다 관중 .
- 4000만 명 — 결승전을 지켜본 미국 내 TV 시청자 수 .
그들의 노력은 극적으로 빛을 발했다. 개막전에서 미국은 덴마크를 3-0으로 꺾었고, 미아 햄은 골과 어시스트를 기록하며 팀을 승리로 이끌었다. 미아 햄은 "경기장에 들어서는 순간 소름이 돋았다. 꽉 찬 경기장과 'U-S-A' 구호는 우리가 항상 꿈꿔온 월드컵의 모습이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
결정적 순간: 릴리의 헤딩과 스커리의 선방
결승전은 120분간 득점 없이 진행됐다. 연장 후반, 중국의 판윈지에의 헤딩이 골문을 향했고, 볼은 이미 골키퍼 브리아나 스커리(Briana Scurry)의 손을 벗어난 듯 보였다. 그러나 오른쪽 골포스트에 서 있던 크리스틴 릴리(Kristine Lilly)가 순간적으로 뛰어올라 볼을 머리로 걷어냈다. 만약 그 순간이 없었다면, 혹은 그녀가 정해진 포지션을 이탈했더라면 우승은 없었다. 릴리는 "평소에도 포스트에 서 있었고, 그렇게 공을 걷어낸 건 처음"이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 이후 승부차기에서 스커리의 선방이 더해지며 미국의 우승이 확정됐다.
스포츠 브라: 장비에서 상징으로, 그리고 논란
경기가 끝난 후, 세상은 채스테인의 스포츠 브라 이미지에 주목했다. 많은 언론은 이를 "파격적"이고 "선정적"이라고 표현했고, 일부 보수층은 "공공장소에서 나체를 드러냈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국제축구연맹(FIFA)은 그녀에게 "부적절한 세리머니"라며 벌금 1,000달러를 부과했다 [citation:3]. 흥미롭게도 같은 시대 남자 선수들이 유니폼을 벗는 것은 '열정'과 '카리스마'로 미화됐다. 여성의 몸, 특히 가슴을 지탱하는 '브라'라는 물건이 공개되는 것에 대한 사회적 금기가 얼마나 강고한지를 드러낸 순간이었다.
그러나 이 사건은 아이러니하게도 '스포츠 브라'라는 장비의 존재와 중요성을 대중에게 제대로 인식시키는 계기가 됐다. 역사적으로 스포츠 브라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1977년, 린다 린달(Lisa Lindahl)과 그녀의 자매는 달리기할 때 가슴 통증을 호소하다 남성용 서포터(지지대)인 '조크스트랩(jockstrap)' 두 개를 꿰매어 최초의 스포츠 브라를 만들었다. 이것이 '조그브라(Jogbra)'의 시초다 . 그들은 "좋은 신발과 좋은 브라"가 여성 러너의 필수품이라고 주장하며 스포츠 용품점에 이 제품을 진열해 달라고 요구했다.
오늘날 스포츠 과학은 스포츠 브라의 중요성을 재확인하고 있다. 영국 포츠머스 대학교의 유방 생체역학 연구소 조안나 웨이크필드-스커(Joanna Wakefield-Scurr) 교수 연구에 따르면, 부적절한 브라는 운동 시 보폭을 최대 4cm까지 단축시키고, 운동 완료에 필요한 에너지를 증가시킨다 . 또한 여성 선수 46%가 가슴 때문에 운동을 방해받는다고 느낀다는 통계도 있다. 즉, 채스테인이 입고 있던 것은 '속옷'이 아니라, 그녀의 운동 능력을 최적화해준 과학적인 '스포츠 장비'였다는 것이다.
그 날의 함성은 현재진행형이다
1999년 미국 여자 월드컵은 세 가지 큰 유산을 남겼다. 첫째, 미아 햄은 세계적인 스포츠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했고, 수많은 소녀들에게 축구화를 신게 했다. 둘째, 여자 스포츠도 흥행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하며 이후 WNBA, NWSL의 성장 발판을 마련했다. 셋째, 채스테인의 스포츠 브라는 더 이상 숨겨야 할 '속옷'이 아니라, 여성 선수의 필수적인 '장비'이며, 더 나아가 자신의 몸과 능력에 대한 자부심의 상징으로 재탄생했다 .
물론 여전히 가야 할 길은 멀었다. 2020년 도쿄 올림픽을 앞두고 영국 대표팀 선수들조차 자신의 가슴에 맞는 브라를 찾기 위해 애먹었다는 보도는 여성 선수에 대한 세심한 배려가 여전히 부족함을 드러낸다 [citation:9]. 그럼에도 1999년의 그 함성은 여성이라면 당연히 누려야 할 '편안한 운동할 권리'와 '당당하게 자신의 몸을 드러낼 권리'를 위한 투쟁이 현재진행형임을 웅변한다. 미아 햄이 그라운드에서 보여준 투지와 채스테인이 스포츠 브라를 드러내며 보여준 당당함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여성 스포츠의 아이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