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와 애국심의 연결고리: 9/11 테러와 국가 제창의 숨겨진 이야기

스포츠와 애국심의 연결고리: 9/11 테러와 국가 제창의 숨겨진 이야기
미국 스포츠 경기장에서 거대한 성조기를 펼치는 관중과 선수들의 모습, 애국심과 단결의 상징

스포츠와 애국심, 그리고 9/11: 국가 제창이 우리에게 말하는 것

⏱️ 2026년 2월 21일 | 스포츠 인문학 📚 8분 분량

미국의 메이저리그 야구장이나 NFL 경기장에 가본 적이 있는가? 경기 시작 전, 전광판에 'National Anthem'이라는 글자가 뜨고 수만 명의 관중이 일어나 조용히 국가를 바라본다. 어떤 이는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우리는 이것이 너무나 자연스러운 풍경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스포츠와 국가의 결합은 우연한 역사의 산물이다. 그리고 2001년 9월 11일, 그 결합은 전혀 다른 차원으로 도약한다. 이 글에서는 스포츠 행사에서 국가를 부르는 기원과 9/11 테러라는 국가적 비극이 이 전통을 어떻게 영원히 바꾸어 놓았는지, 전문가의 시선으로 그 비하인드 스토리를 파헤쳐본다.

△ 9/11 희생자를 추모하며 불탑(Tribute in Light), 2020년 저지 시티에서 본 빛 속의 헌정

⚾ 뜻밖의 시작: 1918년 월드시리즈와 전쟁의 소용돌이

스포츠 이벤트에서 국가가 연주된 첫 번째 기록은 대부분의 팬들이 예상하는 것보다 훨씬 오래되었다. 정확히는 1918년 9월 5일, 시카고 코미스키 파크에서 열린 월드시리즈 1차전이다. 당시는 제1차 세계대전 중이었고, 미국은 전쟁에 참전한 상태였다. 경기장에는 군악대가 연주를 하고 있었는데, 7회 말 휴식 시간(세븐스 이닝 스트레치)에 군악대가 갑자기 "The Star-Spangled Banner"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citation:1][citation:8].

당시 보스턴 레드삭스의 3루수 프레드 토마스는 해군에서 휴가를 나와 경기에 출전 중이었는데, 그는 군인으로서 본능적으로 즉시 국기를 향해 거수 경례를 했다. 다른 선수들도 가슴에 손을 얹고 따라 했고, 이미 일어서 있던 관중들은 자연스럽게 합창을 시작했다. 뉴욕타임스는 이 장면을 "처음에는 소수만 따라 부르다가 모두가 함께 했고, 마지막 음이 울릴 무렵에는 장내를 가득 메운 엄청난 음량의 선율이 경기장을 감옌다"고 생생히 묘사했다 [citation:8]. 이 감동적인 광경은 곧 월드시리즈의 전통이 되었고, 이후 1931년 '성조기'가 공식 국가로 지정되면서 메이저리그 전 구장, 나아가 전 스포츠로 퍼져나갔다 [citation:1].

“단순한 응원가에서 ‘함께 함’의 상징으로… 스포츠와 국가의 결합은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이 만들어낸 문화적 접합점이었다.”

🗽 국가의 진화: 로테이션에서 의식으로, 그리고 저항의 아이콘으로

시간이 흐르면서 국가 제창은 단순한 의례를 넘어선 의미를 획득한다. 많은 학자들은 이것이 '시민 종교(civic religion)'의 한 형태라고 분석한다 . 그러나 이 전통이 항상 긍정적인 애국심만을 불러일으킨 것은 아니다. 1968년 멕시코시티 올림픽에서 토미 스미스와 존 카를로스가 검은 장갑을 낀 주먹을 들어올린 블랙 파워 경례, 그리고 최근 콜린 캐퍼닉의 무릎 꿇기 퍼포먼스는 국가라는 의식이 저항의 플랫폼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어빙 체머린스키 법학자는 "국가 제창이 스포츠 행사에서 무언가를 성취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하면서도, "사람들이 자신의 메시지를 표현하기 위해 앉거나 무릎을 꿇는 행위는 헌법이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라고 강조했다. 즉, 국가는 강제된 애국심이 아니라, '우리가 누리는 자유' 그 자체를 상기시키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 9/11이라는 변곡점: '하나 됨'의 상징으로 거듭나다

2001년 9월 11일, 테러 공격 이후 미국 사회는 충격과 혼란에 빠졌다. 프로 스포츠 리그는 일주일 동안 모든 경기를 취소했다. 그리고 9월 17일, 메이저리그가 재개된 날, 스포츠와 애국심의 관계는 영원히 바뀌었다 .

LA 다저스와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의 경기에서는 소방관과 경찰관이 거대한 성조기를 펼쳤고, 피츠버그에서는 공군 예비역들이 국가를 불렀다. 모든 구장에서 사람들은 눈물을 흘리며 '불타는 폭탄이 터지는 속에서도 우리의 깃발은 그대로 서 있었다'는 가사를 되새겼다. ESPN의 분석에 따르면, 이 순간부터 국가는 단순한 노래가 아니라 '트라우마의 치유'이자 '국가적 회복력'의 상징이 되었다. 이후 7회 말에는 'God Bless America'가 추가로 연주되는 관행이 생겨났고, 이는 사실상 9/11 이후 강화된 '이중 국가 체제'나 다름없었다.

델마 경마장에서는 2002년 9/11 1주기를 맞아 기수들이 성조기 실크를 입고 경주에 나섰고, 전국적으로 추모 분위기가 조성됐다 . NFL은 10주년이었던 2011년, 뉴욕과 워싱턴에서 가족들이 직접 성조기를 펼치는 장엄한 추모식을 거행했다. 제트스와 카우보이스의 경기는 그라운드 제로에서 불과 12마일 떨어진 곳에서 열렸고, 관중석에서는 "USA! USA!" 구호가 터져 나왔다 .

🏈 비판적 시선: 과잉된 애국심과 위선

그러나 모든 이가 이러한 흐름에 박수를 보낸 것은 아니다. 저널리스트 하워드 브라이언트는 9/11 이후 스포츠 경기장이 '군국주의와 권위주의'의 쇼케이스로 전락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 그는 경찰관이 국가를 부르고, 군인들이 오버플라이를 하며, 미사일이 전시되는 풍경이 "퍼거슨이나 클리블랜드 같은 곳의 가난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무시하는 결과"를 낳았다고 주장했다.

또한, 이라크 전쟁 당시 카를로스 델가도는 "God Bless America"가 연주될 때 덕아웃에 남아 전쟁에 반대하는 의사를 표시했다 . 팻 틸먼의 비극적인 죽음 또한 성조기로 대표되는 영웅 서사가 어떻게 실제와 다르게 포장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아픈 사례다 .

🎙️ 전문가 논평: "애국심은 하나가 아니다"

하우드 연구소의 리처드 하우드는 "우리는 9/11 이후의 단결된 분위기를 종종 '애국심'이라고 포장하지만, 진정한 애국심은 의견의 일치가 아니라 국가의 개선 가능성에 대한 헌신"이라고 말한다. "카퍼닉이 무릎을 꿇었을 때, 우리는 그를 비난하기보다 왜 그가 그런 행동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들어야 한다. 그가 사랑하는 국가의 불완전함을 고발하는 행위야말로 오히려 진정한 애국자의 모습일 수 있다."

즉, 스포츠에서의 국가 제창은 '무조건적인 지지'가 아니라, '우리가 어떤 나라에 살고 싶은지'에 대한 공개적인 질문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 결론: 스포츠는 여전히 애국심을 노래한다

1918년 우연한 시작, 전쟁과 테러를 거치며 강화된 스포츠와 국가의 관계는 앞으로도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메이저리그와 NFL은 여전히 9/11 주간마다 특별한 패치를 달고, 소방관과 경찰관을 초청하며, 성조기 퍼포먼스를 펼친다. 때로는 그것이 지나친 내셔널리즘으로 비춰질 때도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희생자들을 기억하는 가장 강력한 방식이다.

스포츠 경기장에서 국가가 울려 퍼질 때, 우리는 그것을 단순한 의례로 소비할 것인가, 아니면 그 속에 담긴 수많은 이야기(전쟁의 상흔, 치유의 염원, 저항의 목소리)까지 함께 듣기 위해 귀를 기울일 것인가. 아마도 진정한 애국심이란 후자에 가깝지 않을까. 다음 번 경기장에서 국가가 연주될 때, 당신은 어떤 생각을 하게 될지 궁금하다.


참고문헌: San Gabriel Valley Tribune , Bleacher Report , Daily Racing Form , Washington Times , Commentary Magazine , HuffPost , ESPN , The Press Democrat , ESPN 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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