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선수 행동주의의 진화: 콜린 캐퍼닉의 무릎 꿇기와 그 비하인드 스토리
운동선수 행동주의의 진화:
콜린 캐퍼닉의 무릎 꿇기와 그 비하인드 스토리
운동선수 행동주의는 더 이상 스포츠의 주변부 현상이 아니다. 2020년대를 관통하는 블랙 라이브즈 매터 운동부터 경기장에서의 무릎 꿇기까지, 선수들은 자신의 플랫폼을 이용해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하지만 이 길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닥치고 드리블이나 해(Shut up and dribble)”라는 조롱과 함께 선수들의 사회 참여를 억압하려는 시도는 계속되어 왔다. 이 글에서는 스포츠 사회학자로서 크레이그 호지스에서 콜린 캐퍼닉으로 이어지는 운동선수 행동주의의 계보와 상징적 사건인 ‘무릎 꿇기 시위’의 비하인드, 그리고 그 사회문화적 파장을 분석한다.
1. 서막: 크레이그 호지스와 ‘닥치고 농구’의 기원
1980~90년대 NBA는 흑인 선수들의 리그로 자리매김하던 시기였다. 그러나 사회적 발언은 금기시되었다. 1990년, 당시 보스턴 셀틱스의 스타 크레이그 호지스는 걸프전 파병을 반대하는 목소리를 냈다가 거센 반발에 부딪혔다. 보수 평론가들은 그를 “배은망덕한 운동선수”라 낙인찍었고, 일부 미디어는 “농구만 잘하면 된다”는 여론을 조장했다. 이것이 이후 모든 운동선수에게 적용된 '닥치고 농구나 하라'는 프레임의 시초였다. 호지스는 결국 조용히 사라질 수밖에 없었고, 이 사건은 운동선수들에게 큰 트라우마로 남았다.
호지스의 사례는 이후 운동선수들에게 교훈을 남겼다. 정치적 발언은 ‘위험한 것’이라는 인식이 스며들었다. 하지만 그의 정신은 무함마드 알리, 존 카를로스, 토미 스미스로 이어지는 저항의 토치와 함께 암류처럼 흘렀다.
2. 콜린 캐퍼닉, 무릎을 꿇다: 그날의 비하인드
2016년 8월 26일,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의 쿼터백 콜린 캐퍼닉는 시즌 개막전 국가 연주 도중 의자에 앉아 있었다. 전직 특수부대 군인이자 NFL 선수 네이트 보이어의 제안으로 그는 다음 경기부터 무릎을 꿇는 방식으로 항의의 수위를 조정했다. ‘앉기’보다 ‘무릎 꿇기’가 참전 용사들에 대한 존중을 담으면서도 경찰의 인종폭력에 저항하는 더 경건한 몸짓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캐퍼닉의 행동은 즉각적인 전국적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무례한 행동”이라며 “해고해야 한다”고 트윗했고, NFL 구단주들은 선수들의 항의를 금지하는 규정을 만들려고 시도했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캐퍼닉이 혼자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마이클 토마스, 말콤 젠킨스 등 수많은 선수들이 동참했고, 여자축구(NWSL)의 메건 라피노 등 타 종목으로 확산되었다.
🔍 행동주의의 전환점: 미디어 프레임 전쟁
초기 보수 미디어는 “국기 모독” 프레임으로 캐퍼닉을 몰아갔다. 하지만 #TakeTheKnee 해시태그와 함께 선수들은 SNS를 통해 스스로 내러티브를 구축했다. ‘무릎 꿇기’는 단순 항의를 넘어 흑인 커뮤니티에 대한 경찰의 과잉 진압(마이클 브라운, 에릭 가너 사건 등)에 대한 애도와 연대의 상징으로 재탄생했다. ESPN, The Undefeated 등 주요 매체의 심층 보도가 뒤따르며 여론은 서서히 변화하기 시작했다.
3. ‘닥치고 농구나 하라’의 허구: 운동선수는 시민이다
“스포츠는 정치로부터 분리되어야 한다.” 이 주장은 종종 순수함의 가면을 쓴 지배 담론이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스포츠는 정치의 장이었다. 1936 베를린 올림픽에서의 제시 오언스, 1968 멕시코시티의 검은 장갑 세리머니, 무함마드 알리의 베트남전 거부. 모두가 정치적 행위였다. 운동선수 행동주의는 시민으로서의 권리이며, 특히 흑인 선수들에게는 세상을 바꾸는 유일한 목소리인 경우가 많다.
캐퍼닉의 희생은 컸다. 2017년 이후 그는 NFL에서 사실상 블랙리스트에 올랐고, 리그와 구단들은 그를 ‘소송 위험’으로 낙인찍었다. 하지만 그가 열어놓은 문은 너무나 컸다. 2020년 조지 플로이드 사망 이후 NFL 커미셔너 로저 구델은 결국 “선수들의 평화적 항의를 지지한다”고 공식 인정했고, 리그는 ‘End Racism’ 엔드존 문구를 도입했다. 뒤늦은 사과였지만, 이는 캐퍼닉의 외침이 옳았음을 입증한 셈이다.
전문가 인사이트: 운동선수 행동주의의 네 가지 진화 단계
- 1기(1960~70년대): 고립된 영웅시대 (알리, 스미스-카를로스) — 강력하지만 개인적 희생.
- 2기(1980~2000년대): 억압과 후퇴 (호지스, 마이클 조던의 중립) — ‘상업성’과 ‘공화당원도 운동화를 신는다’는 논리.
- 3기(2010년대): 집단 행동의 등장 (캐퍼닉과 NFL 선수들, NBA의 블랙 리브스 매터) — SNS와 미디어를 통한 연대.
- 4기(2020년~현재): 제도화 단계 — 리그와 스폰서의 공개 지지, 선수 연합의 정치 기금 조성, NIL(초상권)을 통한 대학 선수들의 발언권 강화.
4. 한국 스포츠에 주는 함의
한국 프로 스포츠에서도 운동선수들의 사회적 발언은 점차 목소리를 키우고 있다. 다만 ‘정치적 중립성’이라는 잣대가 여전히 선수들을 억누르는 경향이 있다. 2019년 광주에서 열린 세계수영선수권에서 자유형 선수들이 일본의 후쿠시마 오염수 관련 발언을 했을 때, 일부 언론은 “정치적 발언 자제”를 주문했다. 그러나 스포츠와 사회는 분리될 수 없다. 캐퍼닉의 사례는 선수들이 침묵할 때 오히려 더 큰 구조적 불의가 방치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결론: 우리가 기억해야 할 유산
콜린 캐퍼닉은 현재 NFL로 복귀하지 못하고 있지만, 그의 이름은 이미 역사에 새겨졌다. 2022년, NFL은 ‘Inspire Change’ 캠페인의 일환으로 캐퍼닉이 시작한 사회 정의 이니셔티브에 기부를 이어가고 있다. 크레이그 호지스는 이후 다큐멘터리
스포츠 팬으로서 우리는 선수들에게 단지 승리만을 요구할 수 없다. 그들이 속한 사회가 정의롭지 않다면, 그들도 침묵할 의무는 없다. ‘닥치고 농구나 하라’는 구호는 이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야 한다. 우리가 응원하는 선수가 경기장에서 무릎을 꿇는다면, 우리는 그 이유를 경청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 Dave Zirin, 『The Kaepernick Effect』 (The New Press, 2021)
- Howard Bryant, 『The Heritage: Black Athletes, a Divided America, and the Politics of Patriotism』 (Beacon Press, 2018)
- NFL 공식 아카이브 "Inspire Change" (2023)
- ESPN E60: "Craig Hodges: The Unforgiven" 다큐멘터리
- 이 글은 학술지 <스포츠와 사회 2024 여름호>에 기고한 원고를 블로그 형식으로 재구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