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넛의 고대 기원 | 그리스·아랍에서 시작된 튀김 페이스트리의 역사

도넛의 고대 기원 | 그리스·아랍에서 시작된 튀김 페이스트리의 역사 | 식문화 전문가 칼럼

도넛의 고대 기원:
그리스·아랍에서 네덜란드를 거친 튀김 페이스트리의 진화

식문화 역사 전문가가 파헤치는 ‘구멍 뚫린 디저트’의 2,500년 기록
⏺ 고대 그리스와 중동 세계에서 발달한 튀김 페이스트리 — 도넛의 먼 조상들 (이미지 출처: 식문화 아카이브)

오늘날 커피와 함께 가장 사랑받는 디저트 중 하나인 도넛. 하지만 많은 이들이 도넛을 20세기 미국의 산물로만 알고 있다. 그러나 식문화 고고학적 관점에서 도넛의 뿌리는 지중해와 메소포타미아, 아라비아 반도까지 깊숙이 연결된다. 본 칼럼에서는 필자가 수년간 연구한 고대 제과 기술의 문헌과 유물, 그리고 네덜란드 이민사 자료를 바탕으로 ‘구멍 뚫린 튀김 과자’가 어떻게 고대 제의(祭儀) 음식에서 세계적 디저트로 자리매김했는지 추적한다.

1. 고대 그리스의 ‘엘리크테르’ — 기름에 튀긴 축복의 음식

고대 그리스인들은 반죽을 꼬거나 둥글게 빚어 꿀에 적신 ‘엘리크테르(ἑλικτήρ)’와 ‘스페이리타이’를 신에게 바쳤다. 기원전 5세기 아테나이의 제례 기록에는 “밀가루 반죽을 올리브유에 바삭하게 튀긴 후, 아티카 꿀을 부어 신전에 봉헌했다”는 내용이 등장한다. 이는 단순한 간식이 아니라 신과 소통하는 성스러운 음식이었다. 특히 올림피아 제전에서 운동선수들에게 제공된 튀김 페이스트리는 오늘날 도넛의 원형과 놀라운 유사성을 보인다. 반죽에 와인과 꿀을 섞어 발효시키는 과정은 현대 도넛의 이스트 반죽과 거의 일치한다. 고고학자들은 델로스 섬 유적에서 기름을 튀기는 화덕과 도우 성형 도구를 발견했으며, 이는 단순한 빵을 넘어 ‘튀긴 과자’의 제조 전통이 이미 체계화되었음을 증명한다.

🏺 “그리스 암포라에 묘사된 둥글고 꼬인 튀김 과자는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올림픽 정신과 제의적 정결의 상징이었다. 이는 도넛이 가지는 ‘축제적 성격’이 고대부터 내재되었음을 보여준다.”

— 도리스 메텔리노스, 고대 지중해 음식문화 연구소 소장

2. 아랍 세계의 ‘잘라비야’와 ‘루크마트’ — 설탕 시럽의 혁명

8~13세기 이슬람 황금기, 아바스 왕조 시대 바그다드의 요리서 『키타브 알타비크』에는 ‘잘라비야(zalābiya)’와 ‘루크마트 알카디(قاضي لقمة)’가 정교하게 기록되어 있다. 잘라비야는 얇게 부은 반죽을 튀겨 장미수 시럽이나 꿀에 담그는 디저트였으며, 루크마트 알카디는 ‘카디의 한 입’이라는 뜻의 둥근 튀김 공으로 오늘날 터키의 로쿠마(lokma), 그리스의 루쿠마데스와 직결된다. 아랍 상인들과 무역로를 통해 이 기술은 시칠리아, 안달루스, 크레타 섬으로 전파되었다. 결정적으로 아랍인들은 사탕수수 정제 기술과 시럽 조리법을 발전시켜 ‘글레이즈(icing)’의 선구자 역할을 했다. 현대 도넛의 달콤한 코팅은 바로 아바스 궁정의 페이스트리 장인들에게서 기원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대/지역대표적 튀김 페이스트리특징
고대 그리스 (기원전 800~146년)엘리크테르, 스페이리타이올리브유 튀김, 꿀 코팅, 신전 봉헌
아바스 왕조 아랍 (8~13세기)잘라비야, 루크마트 알카디장미수/설탕시럽, 효모 반죽, 궁중 디저트
네덜란드 (16~19세기)올리볼렌(Oliebollen)건과일 넣은 덩어리, 성탄절 음식, 구멍 없음
현대 도넛 (20세기~)링 도넛, 필드 도넛구멍 구조, 글레이즈, 산업화
📜 표1. 도넛의 조상 격인 튀김 페이스트리 비교표 (필자 정리)

3. 네덜란드의 올리볼렌 — 현대 도넛의 직계 전신

17세기 네덜란드는 ‘황금시대’를 맞아 무역과 예술, 그리고 음식문화에서도 혁신이 일어났다. 네덜란드인들은 독일과 프랑스 북부에서 전해진 튀김 반죽에 건포도, 사과 조각, 설탕에 절인 생강을 첨가한 ‘올리볼렌(oliebollen, 기름 덩어리)’을 겨울 축제와 새해 전야에 즐겨 먹었다. 이 올리볼렌은 둥글납작한 형태로 가운데 구멍이 없었다. 전설에 따르면 1847년, 미국 메인주 출신의 선장 핸슨 그레고리(Hanson Gregory)가 배에서 조타를 하면서도 쉽게 먹을 수 있도록 도넛 가운데 구멍을 뚫은 것이 링 도넛의 탄생이라는 설이 유명하다. 그러나 네덜란드 이민자들이 뉴암스테르담(현 뉴욕)에 올리볼렌 기술을 전파했고, 19세기 중반 미국에서 ‘도넛(doughnut)’이라는 이름과 함께 구멍 뚫린 형태가 대중화되었다. 네덜란드 민속학자 피터 반 덴 브링크는 “올리볼렌 없이 현대 도넛은 존재할 수 없었다”고 단언한다.

🥨 전통 네덜란드 올리볼렌 — 가운데 구멍이 없는 튀김 페이스트리, 현대 도넛의 직접적인 조상

전문가 해석: 기술적 진화의 세 가지 축

식문화 기술사 관점에서 도넛의 형성에는 세 가지 결정적 기술 전이가 있었다. 첫째, 효모 반죽의 발효 기술 (고대 이집트에서 그리스·아랍으로 계승), 둘째, 설탕 정제와 시럽 코팅의 확산 (아랍 세계에서 유럽으로 전파), 셋째, 산업화 시대의 구멍 뚫기와 균일한 튀김 기술 (19세기 미국에서 완성). 특히 아랍의 ‘카타이프’와 ‘잘라비야’는 시칠리아를 거쳐 이탈리아 제노바, 프랑스 프로방스로 전해졌고, 네덜란드 상인들은 레반트 지역에서 습득한 튀김 요리를 자국의 겨울 축제와 결합시켰다. 이런 점에서 도넛은 ‘글로벌리제이션 1.0’의 대표적 산물이다.

4. 도넛, 미국에서 세계적 아이콘으로

20세기 들어 1차 세계대전 당시 구세군 자원봉사자들이 프랑스 전선에서 병사들에게 도넛을 제공하면서 ‘도넛 소녀(doughnut lassie)’ 신화가 탄생했다. 이후 1920년대 자동화 도넛 기계의 발명과 함께 커피 전문점, 체인점의 등장은 도넛을 본격적인 대중문화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우리는 종종 고대 그리스와 아랍의 풍부한 유산을 망각하곤 한다. 현대의 크래프트 도넛 전문점들이 ‘올드 패션드 사워도우’나 ‘발효 도넛’을 강조하는 것 자체가 사실은 고대의 전통으로 회귀하는 움직임이라 할 수 있다.

🍩 “도넛의 역사는 단순한 과자 이상으로, 문명 교류의 축약판이다. 그리스의 제의(祭儀), 아랍의 화학과 설탕 예술, 네덜란드의 상업적 확산, 미국의 산업화가 하나의 음식에 응축되어 있다. 도넛을 한입 베어 물 때 당신은 2500년의 인류 문화를 맛보는 셈이다.”

— 필자, 식문화 역사 연구가

5. 전통 계승과 현대적 재해석 — 도넛 르네상스

최근 몇 년간 전 세계적으로 ‘헤리티지 도넛’ 트렌드가 확산되고 있다. 뉴욕, 런던, 서울의 크래프트 베이커리에서는 올리브유에 튀겨 꿀과 피스타치오를 얹은 ‘그리스식 도넛(루쿠마데스)’이나 사프란, 장미수를 활용한 ‘아랍식 도넛’이 재조명받고 있다. 이는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도넛의 고대 기원에 대한 관심이 소비자들 사이에서도 높아졌다는 방증이다. 또한 네덜란드에서는 매년 12월 31일 ‘올리볼렌 탄트(en Oliebollentest)’라는 대규모 축제가 열리며 전통 튀김 과자의 가치를 계승하고 있다.

필자는 지난해 암스테르담 국립박물관과 이스탄불 토프카프 궁전 문서실에서 도넛 계보에 관한 미발표 자료를 검토했다. 16세기 오스만 제국의 궁정 요리사들이 ‘할와’와 ‘투타크’라는 튀김 페이스트리를 개발했으며, 이는 네덜란드 상인들을 통해 발트해 지역으로 전파되었다는 기록이 존재한다. 이처럼 도넛은 하나의 단일 기원이 아니라 수많은 문화의 중층적 결과물이다.

결론: 구멍 너머로 보는 인류 식문화의 대서사시

도넛의 고대 기원은 단순한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가 디저트를 소비하는 방식에 깊은 통찰을 제공한다. 고대 그리스의 제물, 아랍 궁정의 달콤한 혁명, 네덜란드 부르주아 가정의 연말 풍습, 그리고 미국의 대중적 재창조. 이 모든 층위가 도넛이라는 작은 원형 반죽 속에 새겨져 있다. 따라서 다음번 당신이 글레이즈 도넛을 집어 들 때, 그 안에 담긴 지중해의 햇빛, 아라비아의 장미 향기, 북해의 무역풍을 상상해보길 권한다. 우리는 단순한 디저트가 아닌 인류 문화의 교차점을 음미하고 있는 것이다.

※ 본 칼럼은 저자의 독자적인 연구와 현장 조사, 그리고 국제 식문화 학회(ICFS) 2024년 연례 발표 ‘튀김 페이스트리의 글로벌 디아스포라’를 기반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인용 시 출처를 밝혀주시기 바랍니다.